종이의 긴장감과 연약함,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노화의 흔적, 관람자의 눈과 손에 따라 생기는 시퀀스의 리듬과 흐름, 그리고 전 세계 어디로든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 이러한 요소들은 포토북을 하나의 ‘살아 있는’ 오브제로 만든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포토북들은 각기 다른 프로젝트를 고유하게 해석한 결과물이다. 디자인과 제작 과정에 담긴 예술성과 지식은 포토북을 단순한 매개체가 아닌, 이 전시 공간을 함께 채우고 있는 프린트나 조형물과 나란히 놓이는 하나의 ‘예술적 오브제’로 만든다.
책장을 넘기는 사적인 경험에서 벗어나, 프린트를 함께 감상하는 보다 집단적인 시선으로 전환되며, 서로 다른 작품들 사이에 예기치 못한 흐름과 대화가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각 작품에 함께 제공되는 노트는, 관람자가 작가의 프로젝트 또는 출판물의 편집적 방향이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지구와 그 너머에서 인간과 비인간 생명 간의 상호연결성, 호혜성, 돌봄’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자연스럽게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래: 주요 참여 작가)
2025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생명(Life)’이라는 주제 아래, 아시아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린코 가와우치를 주요 작가로 선정했다.
가와우치는 부드럽고 빛나는 색채의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데뷔 초기부터 생명의 신비로움과 찬란함, 연약함과 강인함을 다양한 형태로 포착해 왔다. 그의 시선은 꽃과 동물, 가족 같은 일상의 섬세한 존재를 넘어, 화산과 빙하처럼 장대한 자연의 시간까지 아우른다. 이러한 주제들을 하나의 생명력으로 엮어내는 감수성은 그의 사진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이번 특별전은 2023년 파리 포토 데이즈(Photo Days)에서 발표한 최신 작업을 바탕으로, 비엔날레 전시 공간에 맞춰 일부 작품과 공간 연출을 새롭게 구성했다.
1866년, 귀스타브 쿠르베는 《세상의 기원》을 그렸다. 여성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오랫동안 커튼 뒤에 숨겨져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공개 전시되어 있다. 한때는 포르노그래피로 간주되었던 이 그림이 이제는 회화적 대담성과 현대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세상의 기원〉전은 감춰졌던 이미지와 억눌렸던 시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외설인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해왔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한 작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신체는 오랫동안 이상화되거나 삭제되어왔고, 특히 성기는 재현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왔다. 반면 남성의 신체는 조각과 회화, 박물관과 공공장소를 통해 반복적으로 시각화되어 왔다.
이번 전시는 그 억압된 시선의 역사와 마주한다. 감추거나 암시하거나, 혹은 정면으로 응시하는 다양한 전략들이 동원되며, 이는 단순한 노출을 넘어선 감각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으로 이어진다. 감춰진 것을 다시 드러내는 행위는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구축하고, 동시에 사회적 금기를 사유하는 장이 된다. 오늘날, 여성의 몸은 더 이상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재현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성기의 재현은 단지 시각적 표현을 넘어, 시선과 권력, 젠더의 문제를 둘러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생명이 시작되는 그곳에서, 새로운 세계 또한 출발할 수 있는가.〈세상의 기원〉전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